밤이 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불현듯 찾아온 감정의 전조를 느꼈던 시기와 맞물린다. 하루 중 잡스러운 생각이 가장 지배적인 시간에 잠들지 못하는 일이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의 방문, 그리고 그걸 떨쳐내지 못하는 정신. 가히 천재라고 불리는 그에게도 그것은 멋대로 조절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왜 사람은 제 마음에 솔직해지기가 어려운 것인지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아, 물론 지금은 역시나 밤이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것으로 정처 없이 흐르다가 결국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감정을 멋대로 휘두를 수가 없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가,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고 마는 것처럼.
“아이씨!”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을 알리고 있었다. 새벽바람 차가운 줄 모르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섰다가 소름이 오소소 돋아버렸다. 겉옷이라도 챙길걸ㅡ하고 투덜거리면서도 발을 돌리지는 않았다. 고요함이 세계를 집어삼킨 듯해서 어쩌면 세상에 혼자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들리는 것은 오로지 바닥에 걸음을 내딛는 소리. 이 삭막함이 싫지 않아 발걸음을 죽이며 앞으로 나섰다.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깊게 박혀 있다.
“너는 나랑 좀 멀어질 때가 되지 않았냐.”
들어줄 리가 만무한 것들에게 ㅡ애초에 그럴 수 있는 존재도 아니지만ㅡ 친한 척 말을 걸었다. 아주 익숙한 듯. 어차피 돌아오는 것은 무엇도 없을 테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놀랍게도 그것이 대답했다.
“내가 뭔가 잘못했는가…?”
“응…아!?”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게나 큰 덩치를 가진 남자가 어찌 아무 인기척도 내지 않고 바로 옆까지 걸어올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조금 퀭한 눈을 한 로라스는 난감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너 말고. 당황한 표정을 감추려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드렉슬러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자기 완전히 글러 먹었다고.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일부러 바람이나 쐬려고 나온 건데 불면증의 주범과 마주쳐버리고 말았으니.
“이 시간에 왜 잠도 자지 않고.”
“아아, 그게 말이야. 요즘 통 잠이 오질 않아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아니….”
옆자리에 그가 앉았다. 아, 또 한 번 가슴이 일렁인다. 숨을 꿀꺽 삼켰다. 언제부터 이 감정이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외면하려고 해도 비워내려고 해도 정말 한 순간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심드렁한 체하며 슬쩍 눈동자를 돌려 그의 곧은 얼굴을 훔쳐보는 것이 전부였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건조한 바람과 은은한 빛을 받은 그의 옆선이 반짝였다.
“기억하나? 어릴 적, 한참 내가 악몽에 시달리던 때 무섭다고 울고불고 달려가니까 자네가 베개를 끌고 와서 옆에서 같이 자면서 지켜주지 않았나.”
“…그런 적도 있었나.”
“난 잊을 수가 없어. 며칠 그러고 나니까 거짓말같이 몽마가 떨어져 나갔거든.”
“…….”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릴 적을 생각하면 더욱 그래. 마냥 겁쟁이 같고 참 순진한 탓에 이래서 언제 남자가 되나 싶었던 그가 제 키를 넘기면서 어느 한순간부터 듬직한 남자가 되는 걸 모두 지켜보았으니. 어쩌면 그가 변했음을 느꼈을 때가 그 시작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다음에 올 말이 무엇일지 짐작 가면서도 듣고 싶지 않았다. 쓸데없이 멋있을 걸 아니까. 지나치게 과묵한 주제에 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을 쳐대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얼굴과 표정을 보지 못하면 후회하고 말 것 같아서 떨리는 맘을 욱여넣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내가 곁에 있어 주겠네. 무섭지 않도록.”
틀렸어, 인마. 나는 무서운 게 아니야. 귀신이나 악몽 따위로 두려운 게 아니란 말이야. 어둠 속에서 달아나버리는 잠과 다투며 간절히 바라는 것은 달콤한 꿈 이런 게 아니고, 그저 네놈과 좀 더 가슴 뛰는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그런 거라고. 넌 알긴 아냐. 내가 왜 매일 같이 잠을 설치는지, 바보 같은 놈….
ㅡ그치만 역시 그와 마주한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가슴 뛰도록 잘생긴 그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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