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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A3!

어쩐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눈이 스르르 떠졌다. 반쯤 열어놓은 창문에서 더운 바람이 불었다. 뒤통수가 간지럽다. 비단 옅은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큰 손에 안긴 머리 위로 뜨뜻한 숨이 가닥가닥 붙는다. 정수리부터 느껴지는 더위를 느끼며 손에 닿는 등인지 모를 곳을 퍽퍽 쳤다.


더워.”


당연하지만 상대는 답이 없었다. 대신 잠든 숨만 계속 뱉어낼 뿐이다. 좀 더 힘을 주어 등과 팔뚝을 쳐댔다. 그러자 드디어 움찔거리는 반응이 왔다. 으으응, 츠무기 상하고 숨과 함께 가라앉은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품에 박힌 고개를 겨우 들어올렸다. 그는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였다.


반리 군, 좀만 떨어져.”

싫어.”


뭉그러진 발음 주제에 단호히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러고는 오히려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얇은 티셔츠 한 장만 입은 탓에 얼굴 위로 단단한 가슴팍이 선명하게 닿았다. 츠무기는 얼굴이 조금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러든지 말든지 반리는 큰 인형이라도 안 듯이 다리로 몸을 감기까지 했다.


나 진짜 더워, 숨 막혀.”

그래요? 그럼.”


몸을 꿈틀거리기에 이제야 떨어지나 싶었더니 단지 밑으로 내려왔을 뿐이었다. 고개를 꺾어야만 겨우 맞닿았던 시선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직까지도 동공이 반쯤은 풀려 있었지만.


주인의 체온보다는 외부의 계절을 더 타는 손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쓰다듬는다.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음에 대한 불만을 가득 담아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렸더니 이마 근처를 웃돌던 손이 내려와 꽈악 볼을 잡아당겼다.


아야. 뭐해.”

잠이 안 깨서요.”

근데 왜 날 꼬집어.”

귀여워서.”


혹시라도 또 꼬집을까 이제는 입술을 죽 내밀었다. 그러다 후회했다. 반리라면 볼을 잡아당겼던 것처럼 내민 입술을 두 손가락으로 꾹 잡아 늘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눈치 채지 못하게 입술을 도로 집어넣으려는데 순식간에 미적지근한 입술이 그 위를 다녀갔다. 그러고선 아까보단 비교적 더 뜨인 눈으로 둥글게 웃어 보인다.


사죄의 뽀뽀입니다.”

…….”

근데 떨어지긴 싫어요. 츠무기 상, 안고 있으면 엄청 시원하단 말이에요.”

나는 더워.”

이렇게 몸이 차가우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병원 가볼까?”

아니, 나는 덥다니까.”


흐으응. 반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선 다시 츠무기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하지만 에어컨도 있고 밖에서 바람도 불어주고 이럴 때만큼은 안고 있어도 되잖아요.


분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이토록 한적한 주말의 오후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 이 방에 같이 있어야 할 단짝은 개인적인 일로 나가서 밤늦게나 들어온다 했고 다른 단원들도 대부분 더 시원한 곳을 찾겠다며 기숙사 밖을 나가버렸다. 그래봤자 고작 근처 카페나 갔겠지마는.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서 제 할일을 하고 있는지 누구도 두 사람을 찾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았다. 높이 치솟은 더위 외에는 그 아무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에어컨 어쩐지 하나도 안 시원한 것 같은데.


눈앞으로 보이는 단단한 어깨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했더니만 역시나 반리는 금세 또 잠들어있었다. 더운 숨을 쌕쌕 내뱉으면서. 얄미운 마음도 잠시, 조금 전의 저처럼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를 가지런히 넘겨주었다. 그럼 나도 모처럼의 여유를 좀 즐겨볼까하고 눈을 꼭 감았다. 등 뒤로 팔도 감았다. 그러고는 반리가 그랬듯 꼭 껴안았다. 이러고 있으면 더워서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투덜거렸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금방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잠든 새에도 창가에서 조금씩 불던 바람이 뒤통수를 살랑살랑 간지럽히고는 했다.

 

∗ ∗ ∗

 

츠무기.”

?”
오늘 뭐 했어?”

그냥 계속 잤는데.”

……방에서?”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다그치는 듯한 타스쿠의 말투에 고개를 뻣뻣하게 끄덕였다. 설마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했다고 게으르다며 혼내려는 걸까. 괜히 풀이 죽어서 말없이 젖은 머리를 탈탈 털어냈다.


씻고 있던 사이에 돌아온 타스쿠는 츠무기가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올 적부터 내내 심각한 얼굴이었다. 뭐라도 잃어버렸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는 갑자기 방을 나서더니 낯익은 연장통을 들고 나타났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너 대체 방에 어떻게 있었냐. 에어컨 완전 고장 난 것 같은데.”

……?”


맙소사. 어쩐지 에어컨 근처를 계속 서성이던 타스쿠 옆으로 다가가보니 에어컨은 전원만 켜져 있을 뿐 한 톨의 바람도 뱉어내지 않고 있었다. 그냥 덥다고만 생각했지 에어컨이 고장 났으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질 못했는데. 오늘 하루가 유난히 조용했던 데는 이유가 다 있었다. 덜덜거리는 기계가 움직이질 않으니 당연하지.


네가 이 정도로 둔한 줄은 몰랐는데.


에어컨을 고칠 요량으로 연장통을 뒤적거리는 타스쿠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뱉었다. 한숨을 쉬고 싶은 쪽은 본인이었지만 투덜거리는 것보다도 이제는 앞으로의 걱정을 해야만 했다. 만약 이 늦은 시간에 타스쿠도 맛이 가버린 기계를 어찌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낮보다는 서늘한 밤이래도 이 방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반리에게로 가서 들러붙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복수 같지도 않을 복수라고 봐도 좋았다. 그래봤자 손해 볼 사람은 반리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건 전혀 모르는 듯, 츠무기는 핸드폰을 켜고선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메시지를 막 적어내고 있었다. 실은 내심 에어컨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문득 떠올랐다는 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