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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쿠라 / 어디로?

김신비님 2015. 7. 2. 18:26

 몇 시간을 덜컹거리던 바퀴가 끝내 멈춘 곳은 탁 트인 바닷가 앞이었다. 미처 시동도 끄기 전에 보조석 문을 후다닥 열고 뛰쳐나갔다. 바다가 보이는 난간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함성을 질러댔다. 저 먼 곳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곧게 뻗은 머리카락을 살살 간지럽혔다. 작열하는 태양과 소금 짠내가 섞인 공기는 새삼스럽게 여름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었다. 


 “야, 위험하니까 내려와.”


 뒤늦게 차에서 내린 미유키의 목소리에 난간에서 발을 뗐다. 긴 시간 운전대를 잡느라 지친 기색이었다. 쿠라모치는 그런 미유키의 어깨를 잡아끌고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슬리퍼 사이로 고운 모래가 까끌하게 밀려들어왔다. 어지간히 신 난 모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말도 안 되게 성숙해졌던 쿠라모치였는데 그를 처음 만났던 시절보다도 더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다. 


 “좋냐?”

 “응. 야, 너는 간만에 얻은 휴가를 집에서 썩어빠지려고 작정했냐.”

 “난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쉬는 게 제일 휴가 같은데.”


 그제야 기지개를 쫙 켜는 미유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직 파릇파릇한 놈이 말하는 건 아저씨 같아가지곤. 옆에서 궁시렁거리다가 발걸음을 얕은 파도가 내리치는 물가로 옮겼다. 슬리퍼를 벗어 손에 들고 맨발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혼자서 발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물을 사방팔방 튀기다 금세 질렸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미유키를 돌아보았다.


 “미유키, 너도 발 좀 담가 봐.”

 “우리 그럼 저쪽까지 걸어가볼래?”


 미유키는 이미 한 쪽 손에는 벗은 슬리퍼를 들고선 반대쪽 손으로 아득한 곳에 우뚝 서 있는 등대를 가리켰다. 




 마냥 덥기만 하던 여름이었는데 쿠라모치의 말대로 조금은 시원하고 기분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미유키에게 여름은 매일같이 야구공을 받아내고 던지고 쳐대는 하루가 반복되는 계절일 뿐이었다. 쉴 시간도 별로 없고 굳이 쉬려는 의지도 없던 터라 휴일에도 꼬박 연습장에 나가곤 했다. 본인보다 더 답답해하던 것은 쿠라모치였다. 당장 손에는 3일 휴가가 떨어졌는데 하루만 집에서 쉬고 또 연습하러 나가겠다는 말에 그를 억지로 바다까지 끌고 나와버렸다. 


 차가운 바닷물이 발치를 적셨다.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건지 쿠라모치는 혼자서 쉴 새 없이 말을 내뱉느라 심심할 틈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희미하게 보이던 등대는 크기가 커질 줄을 몰랐다. 그냥 발길을 따라, 바람을 따라, 쿠라모치를 따라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나오니까 좋지?”

 “뭐, 그러네.”

 “오늘은 내가 억지로 데리고 온 거니까, 뭐 나중엔 네가 가고 싶은 곳 같이 가줄게.”

 “…."

 

 가고 싶은 곳, 그런 곳이 있었던가ㅡ.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벌써부터 각박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봤자 고작 23살이었고, 쿠라모치의 말대로 아직은 파릇파릇할 나이였다. 이렇게 융통성 없이 지내기도 십수 년이었다. 회의감이 드는 인생은 뒤로하고, 쿠라모치가 어디든 같이 가준다는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억지로 끄집어내 보려고 해도 정작 머릿속에 떨어지는 것은 엉뚱한 것뿐이었다.


 “나 가고 싶은 데 있어….”

 “어디?”

 “거기 가면, 평생 아무 데도 안 떠나고 머물고 싶은 그런 데.”

 

 그래서 어딘데. 두 발자국 앞에서 저를 뒤돌아 보았다. 어쩐지 발밑의 파도가 더 세게 치는 것 같았다. 문득, 이 넓은 바닷가에 둘만 덩그러니 서 있다는 감각이 바닷물을 따라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냥 이대로 이곳에 멈춰있는 것도 좋을지 몰랐다. 


 “나중에 말해줄게.”


 얼굴에 물음표를 그리고 있는 쿠라모치에게 얇은 미소를 보이며 다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시 옅은 안개가 그득한 등대를 향해 걸어갔다. 고운 모래사장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지면 넘실거리는 파도가 삼켜버렸다. 그들의 흔적이 조용히 쓸려 내려갔다. 


 ㅡ가고 싶은 곳이 딱 하나 있는데 말야. 이 감정이 기어코 끝에 다다르면 네 마음으로 정착하고 싶어. 너도 나도 평생 다른 곳에 마음 주지 말고 서로에게 머물러줄 수 있는 곳으로.


 언젠가는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도록, 글자 하나 빼먹지 못하도록, 입안에서 계속해서 되새김질했다.